공지사항

브리핑[탈시설장애인당當 공동대변인 브리핑] ‘소비자 권리’로 장애인의 삶은 담보될 수 없다

202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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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장애인당當 공동대변인 브리핑]

‘소비자 권리’로 장애인의 삶은 담보될 수 없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기조: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시장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장애인들의 삶과 권리는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사회서비스, 탈시설 등 모든 영역에서 답보 상태를 넘어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다양한 맥락에서 검토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철저한 맹신 속에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로 이어진 민주당 정권 역시 신자유주의를 추종했지만, 이들 정권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진할 때의 표면적 명분과 핑계는 권력이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반면 현재 윤석열 정부의 신자유주의는 ‘이게 최고의 선(善)이다’라는 확신과 신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 선거 시기부터 전면에 내세운 대표적 장애인 정책이 바로 장애인 ‘개인예산제(personal budgets)’이다. 개인예산제는 어떤 개인에게 제공될 사회서비스의 총량이 정해지면 이를 이용자에게 현금 내지 바우처 등으로 지급하고, 이용자는 시장 또는 유사시장(quasi-market)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자유롭게 선택해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미 2023년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 간 서울 마포구, 경기 김포시, 세종시, 충남 예산군에서 모의적용 사업이 이루어졌고, 2024년과 2025년 시범사업을 거쳐 2026년 전면 시행될 예정에 있다.

  

장애인 개인예산제의 무익함과 해로움

 

한국에서 개인예산제는 바우처를 통해 제공되고 있는 활동지원서비스, 주간활동서비스(18세 이상) 및 방과후 활동서비스(청소년), 발달재활서비스에 대한 칸막이를 부분적 혹은 전면적으로 없애는 것(소위 ‘통합바우처형’), 혹은 활동지원서비스의 예산 중 일부(10~20%)를 다른 사회서비스에 사용할 수 있도록 용도와 용처를 확대하는 것(소위 ‘활동지원 확대형’)으로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2023년 시행된 모의적용 사업은 후자의 활동지원 확대형을 모델로 하고 있다. 어느 쪽이 되었든 이 제도는 우리나라의 장애시민들에게 ‘무익하거나 혹은 나쁘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첫째, 한국은 GDP 대비 장애인복지지출이 0.71%로 OECD 평균 1.98%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다(김현지 외, 『2023 장애통계연보』, 한국장애인개발원, 2023, 367쪽). 이러다 보니 스웨덴의 장애인들은 ‘주(週) 평균’ 127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한 반면(2015년), 한국의 경우 ‘월(月) 평균’ 127시간을 기준으로 중앙정부의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이 책정되어 왔다(2020~2023년). 달리 말하자면, 한국의 경우 장애인서비스지원 종합조사를 통해 받을 수 있는 활동지원서비스의 ‘최대치’가 월 480시간이지만, 스웨덴의 경우 ‘평균적으로’ 월 480시간의 서비스를 이용했던 것이다. 더구나 발달장애인의 경우에는 약 90% 정도가 월 60~120시간의 서비스밖에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비스 간 칸막이를 없애 자율적으로 조정하라거나,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을 다른 곳에 자유롭게 활용하라는 것은 말 그대로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많은 나라들에서 개인예산제를 중심으로 정부와 장애계 간에 모종의 타협이 이루어졌던 이유 중 하나는 예산 집행의 효율성에 있었다. 서구 국가들의 경우에는 현물서비스의 형태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다 이를 현금 또는 바우처로 전환하면서 다소 비대한 형태로 존재했던 인력(공무원 및 준공무원)의 인건비와 행정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이미 ‘준현금지급제도(바우처) + 유사시장 시스템’하에 있기 때문에, 비용을 절감하거나 절감된 예산을 투여해 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는 여지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 서구 사회의 경우 공공 중심의 사회서비스 체계를 구축한 후 민영화라는 과정을 거쳤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사회복지법인을 중심으로 한 민간 중심의 복지 체계가 구축되면서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공적 책임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즉 서구 사회의 경우 민영화를 추진했다 하더라도 공공부문이 여전히 일정한 지분을 지니고 있는 반면(예컨대 스웨덴의 경우 활동지원서비스 제공기관의 47.5%가 지방자지단체다), 한국의 경우 애초 공공부문의 지분이 거의 전무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민간 시장의 역할을 더욱 확대하는 개인예산제가 도입될 경우, 그것은 곧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라는 과제가 포기됨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대안은 ‘서비스별 자기주도 사정’에 기반한 장애인권리예산제

 

발달장애인법 등에서 공식화된 용어를 따르자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주로 ‘개인별 지원’이라는 용어로 개인예산제에서 이야기하는 ‘개인별 맞춤(personalization)-자기주도 지원(self-directed support)’의 문제의식을 표현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장애등급제 폐지의 과정에서 논의되었던 개인별 지원에는 개인예산제와는 상이한 문제의식과 강조점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자기주도 지원이라는 개념의 맥락에서 말하자면 ‘자기주도 사정(self-directed assessment)’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여전히 재활적 기준에 얽매여 있는 일상생활활동(ADL)/도구적 일상생활활동(IADL) 등을 바탕으로 한 전문가의 획일적 사정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필요와 욕구와 환경을 반영하여 이루어지는 사정이 핵심인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장애인권리예산제―장애인의 기본권이 법률상의 조항을 넘어 구체적 예산을 통해 공적으로 보장되는 시스템―의 실현이 우리의 당면한 목표이자 대안이라 할 수 있다. 탈시설장애인당은 이러한 장애인권리예산제의 실현을 위해 장애인 대중과 시민의 힘을 모으고 끝까지 함께 투쟁해 나갈 것이다.

 

 

2024. 2. .9.

 

탈시설장애인당當 공동대변인 김도현



(탈시설장애인당 공동대변인) 김도현 약력


1974년 7월 19일 서울 출생 

 * 노들장애인야학 초대 사무국장 역임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초대 정책실장 역임

 *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 차별에 저항하는 장애인언론 〈비마이너〉 발행인

 * 『차별에 저항하라』,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장애학의 도전』 저자

 * 2004년 제2회 정태수상, 2009년 제4회 김진균상(사회운동 부문)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