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기고][비마이너] ‘무소속 후보’였던 나는 ‘무소속’이 아니었다 / 조상지

2026-08-20
조회수 33

‘무소속 후보’였던 나는 ‘무소속’이 아니었다 / 조상지


조상지, 정치에 나서다 ②
지역 정치를 가로막는 현행 「정당법」
“우리의 정치는 결코 무소속이 아니다”

[편집자 주] 탈시설 당사자이자 최중증 뇌병변장애인인 조상지 씨는 지난 6·3 지방선거에 서울시의원 종로제2선거구 후보로 출마했다. 선거 결과 조상지 씨는 831표(2.13%)를 얻었다. 조상지 씨가 자신의 선거운동 경험을 담은 글을 비마이너에 보내왔다. 세 차례에 걸쳐 그의 글을 싣는다. 

① 정치는 장애인의 삶을 결정했지만, 장애인은 정치를 결정하지 못했다
② ‘무소속 후보’였던 나는 ‘무소속’이 아니었다
③ 전동휠체어와 AAC로 선거의 새로운 모습을 만들다

0bc29dc523f97.png
조상지 씨의 선거사무소 외벽에 대형 선거 현수막이 걸려 있다. 현수막에는 ‘탈시설장애인당 무소속 조상지’, ‘상실과 약탈의 서울, 지금 상지와 바꾸자’라고 적혀 있다. 조 씨는 시설이 감옥임을 상징하는 주황색 죄수복을 입어 탈시설 당사자임을 강조했다. 사진 탈시설장애인당

나는 탈시설장애인당의 당원이다. 2021년에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고, 대변인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시민들에게 알리기도 했다. 현재는 지난 5월 4일 창당한 서울탈시설장애인당의 대표다. 그러니, 나는 한 번도 무소속인 적이 없었고, 혼자인 적도 없었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도 나는 서울탈시설장애인당의 당원들과 함께 정책을 만들고, 선거운동의 방향을 논의하고,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우리의 정책을 설명했다. 선거운동은 우리가 어떤 정치를 만들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분명 정당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선거공보에 적힌 내 이름 앞에는 ‘무소속’이라는 글자가 붙었다. 서울탈시설장애인당이 현행 「정당법」에 따른 조직과 규모를 갖추고 있지 않아 법정 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정 정당이 되려면 반드시 서울에 중앙당을 두고, 5개 이상의 시·도에 시·도당을 갖추고, 해당 지역에 주소지가 있는 1,000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해야만 한다.

모두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에 참여하려면 먼저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을 만나려면 그 사람에게 갈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시외고속버스가 단 한 대도 없다. 이동할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으면서 지역을 이동하며, 사람을 만나고 당원을 조직하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장애인에게 정치를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실제로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 우리는 매 순간 몸으로 경험한다.

지난 8월 3일,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기 위해 휠체어 동료 5명과 함께 노량진역에서 서울역 부근에 있는 한국재정정보원으로 가려고 지하철을 기다렸다. 들어오는 열차마다 승객들로 가득했다. 30분 넘게 탑승하지 못했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열차 입구에서 함께 탑승할 수 있도록 승객들에게 안으로 이동해달라고 부탁했다. 공간은 나지 않았고, 일부 승객들은 말했다. “시민들 괴롭히지 말고 국회나 청와대에 가서 정치인들에게 이야기하라” 

노량진역에서 서울역까지 고작 두 정거장을 가는 일이었다. 탑승을 시도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특정 장애인단체가 불법시위를 하고 있다’는 방송이 나왔다. 우리의 탑승만 거부한 게 아니라 역무원은 기어코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을 모두 내리게 했고, 열차 운행을 중단했다. 

정치로 해결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정치적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움직일 수 있는 기본적인 사회적 조건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지난 3일 ‘70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당시 노량진역. 지하철 승강장에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활동가 두 명이 지하철 출입문 앞에 멈춰 서 있다. 객차 안은 승객들로 붐벼 휠체어 이용 공간이 확보되지 않은 모습이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지난 3일 ‘70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당시 노량진역. 지하철 승강장에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활동가 두 명이 지하철 출입문 앞에 멈춰 서 있다. 객차 안은 승객들로 붐벼 휠체어 이용 공간이 확보되지 않은 모습이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나는 하나의 죽음을 기억한다. 어머니가 운영하던 성일장 여관에서 월세를 내며 살던 한 일용직 노동자가 어느 날 자신의 방에서 홀로 죽음을 맞았다. 세상을 떠난다는 인사는 시신이 부패하는 냄새로 대신했다. 아무도 맡지 못하는 냄새를 내가 가장 먼저 맡았다. 며칠 동안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어머니에게 말을 했지만, 아무도 냄새를 알아채지 못했다. 구급대원들이 방으로 들어가 그의 시신을 수습했고, 그의 못다 한 인사처럼 냄새는 한동안 여관 안에 남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성일장에는 갈 곳이 마땅하지 않은 사람들도 살았고, 지방에서 일자리를 찾으러 수도권으로 올라온 사람들도 살았다. 한 건물에 살고 있었지만 서로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가까이 살면서도 누군가의 죽음조차 제때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고립되어 있었다.

그 사람의 삶은 왜 그렇게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을까? 아직도 많은 동료들을 시설에 남겨두고 나온 나는, 그 죽음에서 우리의 모습을 봤다. 소외된 사람들의 삶은 지역에서도, 정치에서도 쉽게 보이지 않음을 알았다.  

소외되고 고립된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나는 그 출발점이 지역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가 있든 없든, 가난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모두 지역에서 살아간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같은 지역에서 만나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서로의 문제를 발견하고, 함께 해결할 방법을 찾아가는 곳이 지역이다. 정치는 왜 지역에서부터 시작될 수 없을까?

우리는 서울에서 살아가며 서울의 문제를 가지고 정치를 시작했지만, 정당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으로 가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에서 정치를 시작하려는데,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지역을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나는 현행 정당법이 지역에서 시작되는 정치를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정당들이 존재한다. 독일에는 특정 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정당이 있고, 인도에는 특정 주에서 활동하는 ‘주 정당’이 있다. 스페인과 영국에서도 자치주나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정당들이 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역의 문제를 가지고 스스로 정당을 만드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인가?

서울시의원 종로구제2선거구 본후보 등록에 필요한 추천인 100명의 서명을 받기 위해 거리에서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있는 조상지 씨. 테이블 위에는 추천인 명부와 ‘조상지 후보를 서울시의회로!’라고 적힌 손팻말이 놓여 있다. 사진 탈시설장애인당서울시의원 종로구제2선거구 본후보 등록에 필요한 추천인 100명의 서명을 받기 위해 거리에서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있는 조상지 씨. 테이블 위에는 추천인 명부와 ‘조상지 후보를 서울시의회로!’라고 적힌 손팻말이 놓여 있다. 사진 탈시설장애인당
지난 5월 25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서울탈시설장애인당 활동가들이 ‘서울특별시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의 효력 정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현수막에는 “이것도 정치다! 무소속이 아니라 서울탈시설장애인당이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 탈시설장애인당지난 5월 25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서울탈시설장애인당 활동가들이 ‘서울특별시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의 효력 정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현수막에는 “이것도 정치다! 무소속이 아니라 서울탈시설장애인당이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 탈시설장애인당

지난 5월 28일, 서울탈시설장애인당은 지역 정치를 가로막는 현행 정당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우리의 헌법소원은 서울탈시설장애인당만 정당으로 인정해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직접 정당을 만들고, 후보가 되어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다. 정당법을 바꾸는 것은 지금까지 정치에서 배제되어온 사람들이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민주주의의 자리를 넓히는 일이다.

법은 나를 무소속으로 분류했지만, 우리의 정치는 결코 무소속이 아니었다.

<필자 소개>
조상지. 서울탈시설장애인당 대표. 진보적 장애운동 활동가이자 장애인 당사자로, 장애인의 권리와 존엄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