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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비마이너] 정치는 장애인의 삶을 결정했지만, 장애인은 정치를 결정하지 못했다 / 조상지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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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장애인의 삶을 결정했지만, 장애인은 정치를 결정하지 못했다 / 조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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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지, 정치에 나서다 ①
지난 6·3 지방선거에 서울시의원 종로제2선거구 후보로 출마한 조상지 씨
조상지 씨가 전해주는 정치 참여의 이유
“장애인의 현실 뒤에는 정치가 있다”

[편집자 주] 탈시설 당사자이자 최중증 뇌병변장애인인 조상지 씨는 지난 6·3 지방선거에 서울시의원 종로제2선거구 후보로 출마했다. 선거 결과 조상지 씨는 831표(2.13%)를 얻었다. 조상지 씨가 자신의 선거운동 경험을 담은 글을 비마이너에 보내왔다. 세 차례에 걸쳐 그의 글을 싣는다. 

① 정치는 장애인의 삶을 결정했지만, 장애인은 정치를 결정하지 못했다
② ‘무소속 후보’였던 나는 ‘무소속’이 아니었다
③ 전동휠체어와 AAC로 선거의 새로운 모습을 만들다

지난 5월 15일, 조상지 씨가 선거관리위원회를 찾아 후보자 등록을 하고 있다. 후보자 등록 서류가 담긴 봉투에는 “상실과 약탈의 정치 지금 상지와 바꾸자!”라고 적혀 있다. 사진 탈시설장애인당지난 5월 15일, 조상지 씨가 선거관리위원회를 찾아 후보자 등록을 하고 있다. 후보자 등록 서류가 담긴 봉투에는 “상실과 약탈의 정치 지금 상지와 바꾸자!”라고 적혀 있다. 사진 탈시설장애인당

“정치는 나와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다”

나는 투표가 나의 권리라는 것을 몰랐다. 정치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정치는 단 한 순간도 내 삶을 비켜 간 적이 없었다. 내가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살아갈지, 어떤 권리를 누릴지는 내 선택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가 만든 조건 안에서 결정되고 있었다. 

나는 최중증 뇌병변장애인이다. 서울에 살던 나는 열다섯 살에 강원도 철원의 장애인거주시설로 보내졌다.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내게 물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애인은 장애인끼리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은 내가 살 곳이 하루아침에 집에서 시설로 바뀌는 이유가 되었다. 

시설에도 선거 날은 있었다. 성년이 된 뒤 보행이 가능한 동료들이 투표하러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단 한 번도 “투표하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설은 통제의 공간이었다. 다른 사람이 정해준 대로 살아야 했고, 허락을 받아야 이동할 수 있었다.

타인의 허락과 도움 없이는 한 걸음도 이동할 수 없는 나에게 투표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령 투표를 한다고 해도 내 삶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도 없었다. 헌법은 투표권을 보장했지만, 나에게 투표권은 박탈당한 권리였다. 시설에서 나는 시민이 아니었다. 그렇게 정치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15년 만에 어머니의 도움으로 시설을 나왔지만, 지역사회에서의 삶도 그냥 살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2021년 어머니와 함께 살던 성일장 여관이 재개발로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 그곳은 어머니가 운영하던 여관이자 우리 가족의 삶터였다. 그러나 아무런 보상도, 대책도 없었다.

쫓겨나 다시 시설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싸우다 죽겠다고 결심했다. 어머니 등에 업혀 옥상 망루에 올라 몇 달 동안 강제집행에 맞섰다. 재개발조합과 강제집행을 위해 동원된 용역들과 맞서 싸우면서 철거민 투쟁은 어머니와 내가 함께 살아갈 공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눈앞의 삶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내가 왜 이런 현실에 놓였는지, 이 현실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성일장 옥상 목욕탕 굴뚝에 설치된 망루의 모습. 사진 조상지성일장 옥상 목욕탕 굴뚝에 설치된 망루의 모습. 사진 조상지
망루농성 당시 구리경찰서의 강제조사에 조상지 씨가 AAC(보완대체의사소통) 기기로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사진 조상지망루농성 당시 구리경찰서의 강제조사에 조상지 씨가 AAC(보완대체의사소통) 기기로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사진 조상지

“내 삶을 내가 결정하는 것이 곧 정치”

노들장애인야학을 다니게 되면서 ‘인권’을 배웠다. 처음으로 중증장애인인 나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은 권리를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겪어 온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시설에서 살아야 했던 것도, 망루에 오르게 된 이유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도 개인의 불행이 아니었다. 장애인의 삶을 결정해 온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그 모든 현실 뒤에는 정치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구조를 바꾸는 일도 정치라는 것을. 거주와 이동, 교육과 노동처럼 장애인의 삶을 결정하는 문제는 모두 정치와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올해 6·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원 종로구 제2선거구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장애인의 삶을 결정하는 자리에 장애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치의 대상이었던 사람이 직접 정책을 만들고 시민의 선택을 받는 것, 그것이 내가 출마한 이유였다.

지난 4월 20일, 조상지 씨가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6·3 지방선거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많은 장애인 당사자와 활동가들이 모여 조 씨의 출마에 힘을 보탰다. 사진 탈시설장애인당지난 4월 20일, 조상지 씨가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6·3 지방선거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많은 장애인 당사자와 활동가들이 모여 조 씨의 출마에 힘을 보탰다. 사진 탈시설장애인당
조상지 씨가 출마한 종로제2선거구에 걸린 선거 현수막. 현수막에는 “장애인도 시민으로 자립하는 민주주의, 종로구 장애인지원주택 마련”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탈시설장애인당조상지 씨가 출마한 종로제2선거구에 걸린 선거 현수막. 현수막에는 “장애인도 시민으로 자립하는 민주주의, 종로구 장애인지원주택 마련”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탈시설장애인당
6월 1일, 조상지 씨가 동대문 완구거리와 신발시장을 찾아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 탈시설장애인당6월 1일, 조상지 씨가 동대문 완구거리와 신발시장을 찾아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 탈시설장애인당

선거운동을 하면서 그 생각은 더욱 분명해졌다. 휠체어에 ‘장애인권리를 시의회로’라는 몸피켓을 달고 서 있으면 “나라에서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잘해주는데 뭘 더 요구하느냐”는 말을 듣는 일이 적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장애인을 권리를 가진 시민이라기보다 국가의 보호를 받는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결과 장애인의 삶을 바꾸는 중요한 결정은 언제나 장애인이 없는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수많은 장애인의 삶과 직결된 서울시 탈시설지원조례가 폐지될 때도 장애인 당사자들에게는 통보만 있었을 뿐이었다.

민주주의의 문턱 밖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정치

선거를 하며 만난 것은 장애인을 향한 편견만이 아니었다. 후보 등록을 위한 추천인 서명을 받으러 돈의동 쪽방촌을 찾았을 때, 글을 쓸 줄 모른다며 주민등록증을 내밀고 대신 작성해 달라는 주민을 만났다. 그날 나는 가난 때문에,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에 정치와 멀어진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민주주의의 문턱 밖에 서 있는 사람은 장애인만이 아니었다.

이번 선거를 통해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나처럼 목소리 없는 사람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정치의 대상이었던 사람이 시민 앞에서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고, 도움을 받던 사람이 지역을 대표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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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 돈의동 쪽방촌을 찾은 조상지 씨. 돈의동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탈시설장애인당

나는 이번 선거에서 831표를 얻었고, 결국 당선되지 못했다. 그러나 투표가 권리라는 것조차 몰랐던 사람도 후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장애인권리에 투표해 준 831명의 시민들과 함께 확인했다. 민주주의는 그동안 타인이 자신의 삶을 결정하더라도 받아들여야 했던 사람들이 직접 정치를 만들고, 후보가 되고, 시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더 넓어진다.

나의 출마는 그 가능성을 확인하는 첫걸음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출마만으로는 민주주의가 바뀌지 않는다. 정치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문을 계속 열어 둘 제도도 필요하다. 장애인의 정치 참여가 일회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역에서 꾸준히 시민과 함께 정책을 만들면서 지속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이번 선거를 통해 확인한 민주주의의 과제이며, 앞으로 우리가 함께 답해야 할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