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평] 5·18이 오늘의 우리를 지켰다면, 오늘의 우리는 누구를, 무엇을 지킬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탈시설장애인당當 조상지입니다.
저는 장애로 학령기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노들야학에 입학해서야 5·18 광주민주항쟁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계엄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됐습니다.
군인들의 총칼에 국민들이 죽임을 당하는 나라. 군홧발에 시민들이 짓밟히는 나라.
우리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일까.
저는 5·18과 4·3을 배우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장애인들을 시설에 가두고 격리시키듯이,
한 도시를 폐쇄시키고, 고립시키고, 죽이는 그곳에서,
옆에 있는 동지들을 의지하며 저항하다 죽임당한 열사들에게
마음 다해 참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3년 전, 노들야학 선생님들과 동료들과 함께
5·18민주묘지에 처음으로 참배하러 갔습니다.
5·18 첫 희생자 김경철님의 묘역에 먼저 참배를 드리는데,
김경철님이 언어장애와 청각장애를 가진 분이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결국 다시, 우리 장애인들이구나.
청각장애로 군인들의 말을 듣지도 못하고,
언어장애로 질문도, 항변도 하지 못한 채
벼락같이 죽임을 당할 때,
그 상황을 이해라도 하셨을까.
얼마나 억울하셨을까.
언어장애가 있는 저에게
김경철님의 억울함은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그는 군인들의 명령을 듣지 못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왜 자신이 붙잡혔는지,
왜 맞아야 하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 설명받지 못했습니다.
억울함을 항변할 언어도,
그 언어를 들어줄 국가도 없었습니다.
국가폭력 앞에서 장애인은 더 쉽게 위험한 몸이 됩니다.
군인의 명령을 듣지 못하면 불복종이 되고,
말로 항변하지 못하고, 몸이 느리면 죽음이 됩니다.
하지만 국가폭력은 언제나 총과 칼의 모습으로만 오지 않습니다.
어떤 국가폭력은 시설이라는 이름으로 옵니다.
어떤 국가폭력은 예산 삭감이라는 이름으로 옵니다.
어떤 국가폭력은 활동지원 부족이라는 이름으로 옵니다.
어떤 국가폭력은 “불편하다”, “예산이 없다”, “나중에 하자”는 말로 옵니다.
그런데 묻고 싶습니다.
총과 칼을 시민에게 들이밀어야만 계엄입니까.
군홧발이 광장을 짓밟아야만 국가폭력입니까.
국가는 왜 시민의 저항은 비상사태라고 부르면서,
장애인의 죽음과 고립은 비상사태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시설에 갇힌 장애인이 폭력과 방임에 노출되는 현실은 왜 비상사태가 아닙니까.
활동지원이 부족해 탈시설장애인이 집 안에 고립되고 방치되는 현실은 왜 비상사태가 아닙니까.
시설 안의 동료들이 세상과 분리된 채, 계엄이 일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현실은 왜 비상사태가 아닙니까.
장애인의 저항이 비상사태가 아닙니다.
장애인을 가두고 방치하는 국가가 비상사태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벼락같이 계엄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계엄을 물리쳤고,
계엄을 지시한 대통령을 법의 심판대 앞에 세웠습니다.
5·18 열사들이, 4·3 열사들이 오늘의 우리를 지켰습니다.
5·18이 오늘의 우리를 지켰다면,
오늘의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를 만나지 못한 시설 안의 동료들을 지켜야 합니다.
시민의 저항을 비상사태라 부르는 국가에 맞서,
우리는 장애인의 죽음과 고립을 진짜 비상사태라고 말하겠습니다.
장애인도 시민으로 함께 살아가는 민주주의를
동지들과 함께 끝까지 만들어가겠습니다.
2026.05.16
조상지
[논평] 5·18이 오늘의 우리를 지켰다면, 오늘의 우리는 누구를, 무엇을 지킬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탈시설장애인당當 조상지입니다.
저는 장애로 학령기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노들야학에 입학해서야 5·18 광주민주항쟁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계엄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됐습니다.
군인들의 총칼에 국민들이 죽임을 당하는 나라. 군홧발에 시민들이 짓밟히는 나라.
우리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일까.
저는 5·18과 4·3을 배우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장애인들을 시설에 가두고 격리시키듯이,
한 도시를 폐쇄시키고, 고립시키고, 죽이는 그곳에서,
옆에 있는 동지들을 의지하며 저항하다 죽임당한 열사들에게
마음 다해 참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3년 전, 노들야학 선생님들과 동료들과 함께
5·18민주묘지에 처음으로 참배하러 갔습니다.
5·18 첫 희생자 김경철님의 묘역에 먼저 참배를 드리는데,
김경철님이 언어장애와 청각장애를 가진 분이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결국 다시, 우리 장애인들이구나.
청각장애로 군인들의 말을 듣지도 못하고,
언어장애로 질문도, 항변도 하지 못한 채
벼락같이 죽임을 당할 때,
그 상황을 이해라도 하셨을까.
얼마나 억울하셨을까.
언어장애가 있는 저에게
김경철님의 억울함은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그는 군인들의 명령을 듣지 못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왜 자신이 붙잡혔는지,
왜 맞아야 하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 설명받지 못했습니다.
억울함을 항변할 언어도,
그 언어를 들어줄 국가도 없었습니다.
국가폭력 앞에서 장애인은 더 쉽게 위험한 몸이 됩니다.
군인의 명령을 듣지 못하면 불복종이 되고,
말로 항변하지 못하고, 몸이 느리면 죽음이 됩니다.
하지만 국가폭력은 언제나 총과 칼의 모습으로만 오지 않습니다.
어떤 국가폭력은 시설이라는 이름으로 옵니다.
어떤 국가폭력은 예산 삭감이라는 이름으로 옵니다.
어떤 국가폭력은 활동지원 부족이라는 이름으로 옵니다.
어떤 국가폭력은 “불편하다”, “예산이 없다”, “나중에 하자”는 말로 옵니다.
그런데 묻고 싶습니다.
총과 칼을 시민에게 들이밀어야만 계엄입니까.
군홧발이 광장을 짓밟아야만 국가폭력입니까.
국가는 왜 시민의 저항은 비상사태라고 부르면서,
장애인의 죽음과 고립은 비상사태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시설에 갇힌 장애인이 폭력과 방임에 노출되는 현실은 왜 비상사태가 아닙니까.
활동지원이 부족해 탈시설장애인이 집 안에 고립되고 방치되는 현실은 왜 비상사태가 아닙니까.
시설 안의 동료들이 세상과 분리된 채, 계엄이 일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현실은 왜 비상사태가 아닙니까.
장애인의 저항이 비상사태가 아닙니다.
장애인을 가두고 방치하는 국가가 비상사태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벼락같이 계엄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계엄을 물리쳤고,
계엄을 지시한 대통령을 법의 심판대 앞에 세웠습니다.
5·18 열사들이, 4·3 열사들이 오늘의 우리를 지켰습니다.
5·18이 오늘의 우리를 지켰다면,
오늘의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를 만나지 못한 시설 안의 동료들을 지켜야 합니다.
시민의 저항을 비상사태라 부르는 국가에 맞서,
우리는 장애인의 죽음과 고립을 진짜 비상사태라고 말하겠습니다.
장애인도 시민으로 함께 살아가는 민주주의를
동지들과 함께 끝까지 만들어가겠습니다.
2026.05.16
조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