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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저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다음 세대의 장애아동들은 부모의 희생만으로 살아남는 삶을 살지 않아야 합니다.

2026-05-08
조회수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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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저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다음 세대의 장애아동들은 부모의 희생만으로 살아남는 삶을 살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저는 어머니의 사랑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진보적 장애운동 현장에서 활동가로 말하고, 탈시설장애인당 서울시당 대변인으로 정치를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최중증장애인입니다.

아기 때부터 혼자 앉지 못했습니다. 누워 있는 사람으로 살다 죽으면 안 된다고 마음먹은 어머니는 제가 8살이 되던 해, 벽 모서리에 시멘트를 발라 저를 앉히는 연습을 시켰습니다.


저는 수없이 넘어졌습니다.

이마에 혹이 났고, 머리가 깨졌고, 얼굴이 방바닥에 정면으로 부딪혔습니다. 이빨이 입술을 찢고 나오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식이 다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 고통을 삼키면서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저를 다시 앉혔습니다.


그렇게 저는 기어코 안짱다리를 하고 앉아 생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어떻게든 비장애인처럼 살게 하고 싶어 했습니다.

흐물흐물 뒤로 넘어가는 저를 들쳐 업고, 제가 15살에 시설에 가기 전까지 삼육재활원과 주몽재활원에 데리고 다녔습니다. 저를 업기 위해 필요했던 아기 포대기 10개가 다 헤어져 버릴 때까지, 어머니는 제가 이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그 사랑을 압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절박했는지 압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고단했는지도 압니다.


그런 어머니도 너무 힘들 때마다 제게 말했습니다.


“상지야, 같이 죽자.”


어머니는 저보다 하루 더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머니보다 하루 먼저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모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죽음과 너무 가까운 운명에 묶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언니는 어릴 때 어머니가 농약병을 앞에 두고 같이 죽자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언니는 연탄불을 피워놓고 같이 죽자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어떤 오빠는 바닷물에 빠져 같이 죽자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집에서 태어났지만, 너무 비슷한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장애인은 가족이 감당해야 할 짐처럼 여겨졌습니다.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 삶을 부모가 혼자 끌어안아야 했고, 그 끝에서 부모와 자식은 함께 죽음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2022년,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발달장애인이 부모에게 죽임당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그때 우리는 분노하며 말했습니다.


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부모에게 죽임당해야 합니까.

왜 장애인과 부모는 함께 살아갈 권리가 아니라, 함께 죽어야 한다는 절망으로 내몰려야 합니까.


그때 우리는 각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 이야기는 개인 가족사의 비극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국가가 책임지지 않은 장애인의 삶이 어떻게 가족 안에서 고통으로 쌓이고, 결국 죽음의 언어로 터져 나오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의 민낯이었습니다.


장애운동을 시작하기 전, 저는 장애에 대한 책임은 부모가 져야 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장애아를 낳았다는 이유로 설움을 당하고, 손가락질을 견디고, 모든 책임을 혼자 떠안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저는 압니다.

그리고 지금의 조상지의 어머니도 압니다.


장애에 대한 책임은 부모 개인의 몫이 아닙니다.

장애인의 삶은 가족이 알아서 감당해야 할 불행이 아닙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임당할 이유도, 시설에 보내질 이유도, 방 안에 갇혀 살아갈 이유도 없습니다.


책임은 사회에 있습니다.

책임은 국가에 있습니다.

책임은 서울시에 있습니다.


장애아동이 태어났을 때, 부모가 제일 먼저 배워야 하는 말이 “같이 죽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장애아의 부모가 평생 들어야 하는 말이 “당신이 책임져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최중증장애인의 삶이 부모의 등, 부모의 허리, 부모의 눈물, 부모의 포기 위에 겨우 세워져서는 안 됩니다.


장애아를 낳은 것이 가족의 형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장애아를 낳았다는 이유로 가족 전체가 고립되고, 부모와 자식이 함께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사회는 끝나야 합니다.

장애인이 태어나도, 중증장애인이 되어도, 발달장애인이어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야 합니다.


어버이날, 저는 어머니 이해옥 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를 살리기 위해, 저를 앉히기 위해, 저를 업고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장애아동의 부모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모의 희생을 칭찬하는 사회가 아니라, 부모가 혼자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당연한 돌봄 노동으로 착취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장애아를 낳았다는 이유로 가족 전체가 삶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다음 세대의 장애아동들은 부모의 희생만으로 살아남는 삶을 살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투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정치합니다.

그래서 저는 탈시설장애인당當으로, 장애인도 시민으로 살아가는 서울을 만들겠다고 말합니다.


어버이날, 어머니께 약속드립니다.


이제 장애인의 삶을 부모 혼자 책임지게 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다음 세대의 장애아동들이 우리처럼 죽음을 먼저 배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시설에 보내며 울지 않아도 되는 사회,

장애인이 가족의 짐이 아니라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장애아를 낳은 것이 가족의 형벌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권리의 시작이 되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국가의 책임으로 바꾸는 정치,

그 정치를 끝까지 하겠습니다.


2026.05.08

조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