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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살아남은 몸, 상처 입은 몸, 기억하는 몸들의 역사 - 제주4·3을 기억하며

202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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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몸, 상처 입은 몸, 기억하는 몸들의 역사

- 제주4·3을 기억하며


제주4·3을 생각하면, 저는 죽음만이 아니라 살아남은 몸을 떠올리게 됩니다.


죽은 사람은 숫자로 너무 쉽게 처리되고, 살아남은 사람의 몸은 너무 자주 설명되지 못한 채 남겨집니다. 예컨대 총상을 입고 살아남은 몸, 가족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 몸, 그날 이후 평생을 후유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몸 말입니다. 제주4·3 생존자들의 증언을 읽으며 저는 그 몸이야말로 국가폭력의 가장 오래된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국가는 한순간 총을 쏘고 지나갔을지 몰라도, 그 폭력은 살아남은 사람의 몸에 평생 남게되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폭력을 행사한 뒤에도 그 몸을 끝까지 책임지지 않습니다. 다친 몸은 남았는데, 국가는 피해의 무게를 다시 증명하라고 요구합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이미 충분히 잃었는데도, 얼마나 잃었는지, 제도의 수혜를 받을 자격을 가질만큼 잃은 게 맞는지 심사합니다. 저는 그 지점이야말로 1949년 4월 3일부터 지금까지 국가폭력이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주4·3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닙니다. 시설을 탈출해 야학에 다니기 전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배우지 못한 채 살아남았고, 세상에 관심을 가질 틈도 없이 버텨내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뒤늦게라도 공부하려고 했습니다. 유튜브로 제주4·3을 찾아보고, 직접 제주에 가서 그 자리를 느껴보려고 했습니다. 역사는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만나야 비로소 조금씩 다가오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억에 다가가는 길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열려 있지 않았습니다. 제주에 갔을 때 저는 서귀포 정방폭포를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생각하며 내려가 묵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계단 때문에 저는 아래로 내려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주차장에 서서 묵념해야 했습니다. 제주4·3추모공원도 처음에는 가지 못했습니다. 당일 장애인콜택시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추모하고 싶어도 닿을 수 없는 자리, 기억하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장소가 있다는 사실을 저는 제 몸으로 다시 배웠습니다.


제주4·3 생존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목소리들〉을 영화관에서 봤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그날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없었습니다. 작은오빠가 저를 업고, 큰오빠가 수동휠체어를 들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겨우 사람들 다니는 통로에 자리를 잡고 영화를 봤습니다.


누군가에게 기억은 마음만 먹으면 닿을 수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기억은 늘 턱 앞에서 멈추고, 계단 앞에서 막히고,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야 겨우 다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주4·3을 생각할 때마다, 기억이란 단지 과거의 장면을 떠올리는 일이 아니라 그 기억에 가닿기까지 몸이 겪어야 하는 멀고도 가파른 과정을 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추모와 배움의 과정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끝내 닿지 못하는 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됩니다.


제주4·3 생존자의 증언 속에는 가족이 눈앞에서 총살당하고, 본인 또한 총상을 입은 채 살아남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몸에 남은 상흔으로 4·3 후유장애를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 대목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제주4·3은 국가가 국민을 학살한 역사이기도 하지만, 그 폭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평생 어떤 몸으로 남겨졌는가의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총을 쏘는 순간에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의 몸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고도 그 책임을 끝까지 다하지 않음으로써 폭력을 끝없이 연장시킵니다.


저 역시 시설에 갇혀 국가폭력을 겪은 장애당사자로서, 폭력이 몸에 남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것은 단지 눈에 보이는 상처나 흉터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동하지 못한 시간, 배우지 못한 시간, 통제당하고 선별당했던 시간,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내 삶의 주인이 아니었던 시간이 몸에 남습니다.


제주4·3 생존자의 후유장애와 제가 시설에서 살아남은 몸은 같은 경험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 몸 모두 국가가 어떤 존재를 마음대로 가두고, 다치게 하고, 침묵시키고, 주변으로 밀어낼 수 있다고 여겼는지, 그 결과를 증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제주4·3 생존자 그이의 몸은 오래전 제주에만 머무는 몸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도 국가와 사회가 어떤 몸을 아래로 여기고 어떤 고통은 견뎌도 되는 것처럼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언으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주4·3을 기억한다는 것은 단지 죽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데서 멈출 수 없습니다. 그렇게 멈춰서는 안됩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몸에 무엇이 남았는지, 그 흔적 앞에서 국가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그리고 오늘의 국가는 반성과 성찰없이 어떤 몸들을 여전히 배제하고 있는지를 함께 묻는 일이어야 합니다. 국가폭력은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살아남은 몸의 상처를 사소하게 여기고, 다시 설명하라고 하고,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밀어내는 방식으로 지금도 이어집니다.


오늘 제주4·3의 희생자들을 기억합니다.

생존자들의 몸에 남은 상흔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상흔 앞에서 국가가 끝까지 책임질 때까지 함께하겠습니다.


2026년 4월 3일

조상지